"괜찮아, 별일 아니야."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때로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분명 불편하고 싫은데, 말하지 못합니다. 상대에게 상처 줄까 봐, 분위기를 망칠까 봐, 혹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그렇게 ‘싫다’는 말은 마음속 어딘가에 눌려 잠든 채,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왜 우리는 '싫어요'라고 말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싫다’는 감정은 본능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쾌와 불쾌를 구분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는 몸이 긴장하고, 마음은 경계 모드로 전환됩니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즉, 누군가에게 “그건 좀 불편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감정 자체는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생길 수 있는 ‘관계의 틈’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는 ‘조화’와 ‘겸손’, ‘인내’가 미덕으로 여겨지며, 불쾌함을 드러내는 것을 이기적이거나 무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자아존중감의 충돌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면에 강한 자아 검열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고,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자신조차 미워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계속해서 무리한 부탁을 해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를 착취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됩니다. 관계는 유지되지만, 자기 존중감은 조금씩 마모됩니다.
‘거절’은 기술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조절된 표현’을 통해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요. “이건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관계를 끊자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와 ‘너’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신호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말하는 방식’입니다. “그건 좀 부담스러워요” “그렇게 되면 제가 힘들 것 같아요”처럼, 감정을 진솔하지만 부드럽게 전달하는 표현은 오히려 상대의 존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반복되는 무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하지 않음’이 오히려 관계를 망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침묵은 동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해를 키우는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싫다'는 말이 관계를 지킨다
마음속 불편함을 외면하고 참고 또 참다 보면, 어느 순간 감정의 문이 닫혀버리게 됩니다. 상대와 대화하고 싶은 의지도, 이해하려는 노력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싫다’는 말은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오래 가게 만드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성숙한 인간관계의 첫걸음입니다. ‘괜찮은 척’보다는 ‘정중한 거절’을, ‘침묵’보다는 ‘솔직한 표현’을 선택할 때, 우리는 더 건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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